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알 무스타르시드 (문단 편집) === 1차 거병 (1125-26년) === 1123년 두바이스는 (이마드 앗 딘 장기가 총독이던) 바스라를 습격하고 마수드와 동맹하였다. 이후 그들은 바그다드를 공격했는데, 아흐마드는 장기와 함께 이를 격파하고 바그다드 성벽을 보강하였다. 그러나 같은해 마흐무드 2세가 우스만을 해임, 처형하자 아흐마드의 명성을 경계하던 알 무스타르시드 역시 그를 해임하였다. 이후 아흐마드는 부친이 세운 니자미야 마드라사에서 교수로 재직하다 자연사하였다. 이러한 셀주크 제국의 혼란을 틈타 알 무스타르시드는 친위대를 조직하였다. 1125년 3월, 그는 술탄 [[마흐무드 2세]]가 경쟁자인 아제르바이잔의 [[토그릴 2세]]와 싸우는 것을 도우며 술탄의 감사 인사를 들었다. 이후 이라크 남부의 통일을 위해 환관 아피프에게 군대를 주어 와시트로 파병했으나 그해 12월 벌어진 전투에서 총독 장기에게 격퇴되었다. 1126년 1월, 마흐무드 2세는 바그다드로 진격하였고 셀주크 군대가 칼리파 궁전을 약탈하였다. 튀르크 군대의 약탈에 분노한 바그다드 시민들이 민병대를 조직해 칼리파 군대를 도와 셀주크 군을 격파하였다. 이에 마흐무드 2세는 장기에게 도움을 요청하였고, 그해 2월 바그다드에 당도한 장기는 재차 칼리파 군을 격파하였다. 두 달 후 마흐무드 2세는 장기에게 바그다드를 맡기고 하마단으로 귀환하였다. 알 무스타르시드는 칼리파 궁에 연금되어 정치에서 배제되었다. 한편 이때의 공로로 장기는 이듬해 모술과 알레포의 아타베그로 봉해진다.[* 모술을 차남 알프 아르슬란에게 봉해주고 장기를 그 아타베그, 즉 섭정으로 앉힌 것] 비록 1128년 대술탄 산자르가 장기 대신 두바이스를 모술 태수에 봉하라 압력을 넣자 마흐무드 2세는 장기에게 모술 퇴거를 명했으나 장기는 무력 시위와 10만 디나르의 선물로 이를 무마하였고 제국의 서부 지역 전체의 지배권을 상징하는 예복을 하사받았다. (1129년) 그러던 1131년, 마흐무드 2세가 사망하며 셀주크 제국은 재차 내전에 돌입하였다. 아들 [[다우드(셀주크 제국)|다우드]]가 계승하였지만 숙부 마수드가 반발하였고, 산자르는 전자를 지지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